잠도 안오고 재밌기도 해서 밤을 새워서 아키텍쳐 중 유즈케이스를 짰다. 짰다기보단 짜내다싶이 뭔가를 만들어 놓고 게임이나 한판 하면서 머리좀 식히려다, 몇년 전에 마지막 포스팅을 한 블로그에 이 모든 행위(뻘짓)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고 열심히 아이디랑 비밀번호를 찾아서 들어왔다.
카테고리를 보니 가관인데, 글의 갯수는 차치하고, 참 이것저것 들쑤시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문단은 완전 혼자만의 추억되새김질 100%)
학교다니던 시절부터 따지면 중학교때 <디카(그땐 필카를 따로부르지 않고 디지털 카메라를 디카라고 불렀다)>를 남대문시장에서 용돈 다 털어내서 사면서 이 모든 행보인지 횡보인지가 시작됐다. 니콘 쿨픽스 2500을 사려다가 품절이라 그냥 2100을 샀다. 약간은 후회되는 부분.
디카로 원하는 디지털 이미지를 획득하면서 포토샵을 익혔고, 싫어하는 학교선생님들을 디스하려고 영화 포스터에 그 분들의 얼굴을 합성하고 그랬다. 딱히 놀리는 내용은 아니었고, 그냥 학교 공식홈페이지에 있는 사진을 끌어다 영화배우 얼굴과 합성시키고, 시대에 저항하는 영화제목으로 바꿨다. 날 죽일듯 패던 2학년 담임선생님 얼굴을 톰행크스와 바꾸고 나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홍길동 학생 죽이기>>가 돼있었다.
중3이 되며 락음악을 접했고, 열심히 불법음원을 CD에 구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약 1,000장의 앨범을 들었다. 잘 버텨준 젠하이저MX200인가 하는 가성비 끝판왕 이어폰이 고맙다. 근데 그때도 가성비란 말이 있었나?
아무튼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은 게임+농구+락음악+미드24, 이 정도 말고는 취미적인 기억이 없다. 그리고 졸업하면서 통신병으로 입대.(응?)
어쩌다보니 상병때 쯤 행정반에서 근무하면서, 부대일지와 휴가/보급품 관리를 했다. 직책은 서무+보급 이었나 그랬다. 이 때 인생에서 꽤 중요한 경험을 했는데, 인터넷도 없는 세상에서 엑셀 도움말(F1)만 읽어가며 함수와 VBA스크립팅을 익혔다. 대견하고 미련하다. 그리고 전 병력의 남아있는 휴가, 외박을 갱신하면서 당일 열외자 수를 카운팅하고 그들의 총번 등등 부대일지에 적어야 하는 정보를 추려냈다. 부대일지가 아래아한글 포맷이라 어느정도는 수작업을 해야했지만, 그 전에 비하면 수치상의 오류도 줄어들고 무엇보다 부대일지 작성에 걸리는 시간이 대폭 줄었다. 늘어가는 짬밥과 업무효율성(과 후임) 덕분에 나중엔 탱자탱자 노느라 바빴다. 또.. 처음부터 아무도 봐주는 사람 없이 나혼자 작성하고, 상급결재 두개를 직접 싸인하고, 그러다가 실수가 생기면 그걸 또 나혼자 수정하고 결재하고 그랬다. 오바를 좀 하자면 그 문서들과 관련해서는 내가 중대장이고 행보관이었다. 소급결재라는 말도 그때 배웠네.
아무튼 '자동화'의 위력, 프로그래밍의 묘미를 맛만 본 상태로 전역을 했다. 그리고 코피쏟고 피똥싸가며 공부해서 수능까지 쳤는데, 전공을 못 정하겠더라. 왠지 어릴때부터 컴퓨터프로그래머가 되리라 마음먹었었는데, 그게 진짜 '왠지' 그랬던거라 확신도 없었고, 늦깍이 신입생이다보니 향후 취업걱정도 되고 그래서 취직 잘된다는 기계공학을 알아봤다. 친구네 누나가 쓰던 전공서적 몇권 훑어보니 그림도 재밌어보이고 진로도 좋은거 같아서 그냥 기계공학과로 지원, 합격했다.
영화동아리에 들어갔고, 감상 약 1천편, 연출 3편, 출연 1편, 편집 5편을 거쳤다. 연출은 재밌고 잘하고싶었던 분야라면, 편집은 재밌고 잘했던 분야라고 하겠다. 그렇게 배운 도둑질로 열심히 학비나 용돈을 벌었다.
2학년이 끝나갈 때쯤, 기계공학만 하기가 왠지 따분했다. 프로젝트를 해봐도 F=ma만 갖고는 뭘 못하겠더라. (당연한거였다. 보통의 학부생이 에너지를 얻는 방법은 사제 엔진을 돌리거나 고무줄을 감는게 아니라 배터리에 모터꼽는거니까.) 이래저래 '제어'가 하고싶어서 전자전기공학 복수전공을 시작했다. 전자 쪽 커리큘럼에 추가로 전산관련 학점도 15학점정도 노리면서.
3학년 1학기였나, C프로그래밍 고급반에 해당하는 수업과 자료구조를 동시에 배웠는데 둘다 너무 재밌었다. 난생 처음 하는 C프로그래밍도 과거 VBA를 만졌던 경험과 열정인지 오기인지로 밀고 나갔다. 그 중 메모리값을 'watch'해가면서 스텝바이스텝으로 돌리는 디버깅이 묘미였다. (그 땐 디버깅이 사람 응급실 대려갈만큼 무서운 놈인줄은 몰랐다.) 자료구조 배우면서는 C언어가 중요한게 아니라 프로그래밍 구조와 설계의 중요성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느꼈던거 같다.
대외 정기 봉사활동도 시작했었는데, 친구사귀고 주량늘린게 전부다. 자랑스럽다. 그리고 방학때 연구실 프로젝트같은데 꼽사리껴서 학점도 따고 연구실 석사형들이랑 LOL내기해서 공짜밥도 따고 그랬다.
4학년이 되면서 전공은 짬뽕비빔밥이 됐다. 포토샵 했던 이미징 경험(나름 빡센 자격증 소유)+시뮬링크+랩뷰+C언어 등등 잡탕으로 차선인식 무인 자동차를 만들고,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무슨 예언이라도 한것마냥 그때 그 차에 ABS를 달았다. 슬립 내려고 여름에 학교동네 공로에 물대서 홍수내고 그랬다. 래미안 주민여러분 그때 하수도 막은거 저에요..
메모리랑 CPU납땜해서 B4용지만한 쌀집계산기도 만들고, 자기소개서 써서 건설사부터 제조업, IT회사까지 다 쓰고 인적성검사보고 면접보고..
정신 차려 보니..
차량용 시스템의 동역학 프로그래머가 되어있었다.
우왕좌왕 걸어오다보니 약간 이런 느낌
그리고 그렇게 몇 해를 거치면서 얻은 경험으로 5%, 불만으로 95%를 채워서 또 다시 이상한 길로 향하게 됐다. 따지고 보면 참 먼 길을 돌아온걸로 보이기도 한다.